멋진 무대를 위해서 나의 의지는 얼마나 사용해야 할까.
고음을 내려면 말하는게 먼저다. 고음에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말하는것이 우선이고 고음은 나중이다. 예를들어 보컬학원에 다니게 되면 고음부터 내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기본적인 발성 연습만 주구장창 시킨다. 그렇게 발성연습을 몇달씩 하면 고음을 조금씩 낸다. 고음을 내며 노래를 하다보면 조금은 우쭐해진다. 고음을 내는게 자신의 발성연습의 결과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고음을 내는건 발성연습의 덕이 아니라 행운에 의해 결정난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듯하다. 하지만 좋은 결과는 노력에 의해 나오지 않는다. 결과는 오로지 행운을 따른다. 실제로도 그렇다. 세상 모든건 주사위 놀이에 의해 결정되고 우리는 보드게임의 말이 될 뿐이다. 주사위에 의해 승부가 결정나고 숫자놀이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라는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또 결과가 행운이라면 노력은 왜 하냐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이는 적절한 의문이 될 수 있다. 결과에는 행운만이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에는 행운 이외에도 환경이 영향을 준다. 환경이란 개인의 노력을 포함한 모든 부산물이다.
결과에는 환경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무대에서 노래를 한다고 하면 무대에 아무런 준비없이 올라갈 수는 없다. 노래 연습을 해야하고 컨디션 조절도 필요하다. 노래 연습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노래 연습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연습은 불가능하다. 연습은 반복되는 일상속 행동인데 이는 의지의 영역이 아니고 환경의 영역이다. 인간의 의지라는건 로또를 사는 행위이다.
의지라는건 확률이 희박하고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력을 준다. 노래를 하는 무대에서 전날 숙면을 취하는건 의지의 영역이 크다. 다시말해 무대 준비하는 1달 기간동안 하루정도는 의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컨디션 조절로만 좋은 무대를 바라는건 사막에서 바늘찾기이다. 의지는 울퉁불퉁한 톱니바퀴에서 튀어나온 톱니이다.
결국 의지는 나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바꾸는데 써야한다. 환경이 나에게 잘 맞는다면 그리고 행운이 따른다면 결과는 당연히 우호적이다. 의지를 좋은 결과를 위해 사용하는건 너무 소모적인 행위이다.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적대적인 환경은 서서히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을 것이다. 내가 행운을 이끌어내고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 그 환경을 만드는데 나의 의지, 열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